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아르메니아인 대학살 (문단 편집) === 유럽 === [[그리스]]는 [[이웃나라]] 튀르키예와 정치적으로 [[그리스-튀르키예 관계|앙숙]]인데다 무엇보다도 비슷한 시기인 1913~1922년 오스만 전역에서 그리스인들이 마구잡이로 학살당했기 때문에 아르메니아에 공감을 표하고 튀르키예를 비난하는 편이다. 이때 죽은 사람이 아르메니아 학살 못지않게 사망자가 25만(튀르키예 주장)에서 90만 명(그리스 주장)에 이른다! 이 학살에 큰 기여를 한 누레딘 이브라힘(1873~1932)은 [[이즈미르]] 화재 당시 그리스인은 모조리 죽이라고 명령했던 인물이며 아르메니아 학살을 비난한 알리 케말 베이를 죽이라고 명령을 내린 인물[* 다만 아르메니아 학살에는 관여하지 않았다.]이다. 심지어 아타튀르크는 그를 우대했고 그가 병으로 죽자 국장으로 장례를 베풀었다. 그러나 그리스 정부와는 별개로 오스만 제국 영내에서 살던 그리스인들 또한 저 당시 아르메니아인 학살에 참여한 흑역사도 존재하는데 튀르키예인, 오스만 제국군들과 같이 트라브존 등지에서 학살에 가담한 일에 대해 그리스나 해외 그리스계 이민자들은 '응? 우리나라 사람들도 튀르키예 놈들이랑 함께 손잡고 너네 나라 사람들 죽이는데 동참했어?'라고 모른 척하거나 깜놀하고 있기에 아르메니아와 그리스 사이에서도 갈등이 없지만은 않다. 다만 학살은 주도한 국가는 튀르키예의 전신인 오스만 제국이고 지리적으로 실질 국경선을 맞닿고 있는 튀르키예와 아르메니아와는 달리 그리스와 아르메니아는 거리상 수백킬로나 떨어진 먼 나라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외교 분쟁의 강도가 낮은 편이며, 양국은 아르메니아인 대학살 문제와 관련해서 튀르키예를 함께 규탄하고 있다.[* 아르메니아인 대학살이 벌어질 당시의 그리스는 그리스 독립전쟁으로 오스만 제국을 몰아내고 겨우 독립하여 외부 국가들에 외교적 영향력까지 행사하기도 어려운 신생 약소국가였다.] 마찬가지로 튀르키예와 사이가 나쁜 [[불가리아]]도 아르메니아인 대학살 문제와 관련해 아르메니아를 편들고 튀르키예를 비난한다. 불가리아도 발칸 전쟁 당시 [[에디르네]]를 비롯한 오스만 제국 곳곳에서 남아 있던 5만에서 8만 정도의 불가리아인들이 마구잡이로 학살당했던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튀르키예의 이이제이가 먹혔는지 여기에다 그리스를 같이 욕하기도 한다. 일부 오스만 제국 지배에 협조하던 그리스인 민병대에 불가리아인 학살을 맡겼기 때문. 그리스야 살고자 어쩔 수 없이 했고 변명하지만 불가리아는 그리스도 학살자로서 같이 욕먹을 문제가 있다고 받아친다. 하긴 오스만 제국 지배 이전부터 둘이 으르렁 싸워오고 서로 마구 죽이던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불가리아도 피해자만이라고 할 수 없는게 당시 불가리아군이 [[발칸 전쟁]] 당시 불가리아 남부에 거주하던 튀르크계+포마크계 무슬림 거의 3~50만을 마구 학살했기 때문이다. 덤으로 위에 상술한 이 전쟁 와중에 난민이 된 무슬림이 100만 명이 넘는데 재산을 잃고 가족이 학살당한 이들은 기독교에 대한 증오로 아르메니아 학살에 열심히 동조했던 돌고 도는 비극이 벌어졌다. 당연히 튀르키예도 으르렁거리며 너희들이 자국에서 벌인 더한 학살은 거론 안 하냐면서 따지고 불가리아도 튀르키예와 그리스처럼 그 와중에 어쩔 수 없다고 하며 자기들이 당한 피해만 외치고 있다.(...) 물론 불가리아와 그리스 모두 오스만 제국에게 수백년 동안 식민 지배를 당하고 이들이 독립 전쟁을 벌일때 튀르키예 또한 그리스와 불가리아의 독립군 세력들을 토벌하면서 민간인 학살을 자행했기에 오스만에게 피해를 입은 피해국가인 건 분명한 역사적 사실이다. 한편으로 똑같이 오스만 제국의 피지배를 겪었던 [[루마니아]]와 [[세르비아]] 등 다른 동유럽 국가도 아르메니아를 지지하며 튀르키예가 아르메니아에 대한 과거사 사과를 촉구하고 있지만 이들 역시 20세기 말에 [[제2차 세계대전]]과 [[유고슬라비아 전쟁]] 당시 몰도바, 우크라이나 등 구 소련권 지역과 코소보,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등 구 유고권 국가들 내에서 대량 학살들을 자행한 가해국의 전적이 있다 보니[* 이 역사적인 배경 때문에 루마니아와 세르비아는 정부, 국회에서 아르메니아인 대학살 결의안을 만들지 못하고 있다. 다른 발칸반도의 주변국인 그리스와 불가리아가 발칸 전쟁이나 튀르키예 독립전쟁때 민간인 학살 논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와 국회에서 아르메니아인 대학살 결의안을 발의, 통과시킨 것과 대조적이다.] 이들 역시 너네들도 누워서 침뱉기를 하냐거나 너네 나라들 먼저 제2차 대전, 유고 내전 당시에 저지른 구소련권 내 유대인들과 보스니아인, 코소보내 알바니아인에게 대학살 자행한 것부터 뒤돌아보고 당시 피해자 유가족들에게 먼저 사과하라며 튀르키예는 세르비아와 루마니아가 아르메니아인 대학살을 비난할 자격이 없다며 맞받아친다. 또 튀르키예 뿐만 아니라 아르메니아인 대학살에 대해 튀르키예를 비판하는 타 유럽 국가들조차도 루마니아와 세르비아는 제2차 세계대전때 추축국 시절, 1990년대 [[유고슬라비아 내전]]이 한창이던 밀로세비치 정부 시절에 저지른 만행들을 되돌아보고 피해를 입혔던 주변국들에게 먼저 사과하라며 루마니아와 세르비아를 비난하며 이들에게 학살 등 전쟁범죄 피해를 당했던 우크라이나와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등 주변 유럽 국가들에서는 '야, 저 놈들이 저 말할 자격이 되냐?'라고 말하며 학살 가해국가였던 역사를 무시하는 주제에 튀르키예에게 아르메니아인 학살에 사과하라고 요구하는 루마니아와 세르비아의 태도를 맹렬히 비난하고 있다.[* 여기에 심지어 이 두 나라는 전범 밀로셰비치와 안토네스쿠를 영웅으로 추앙하는 극우 민족주의자들도 존재하며 루마니아의 경우는 한 술 더 떠서 정부에서 안토네스쿠를 정식으로 복권시켰다.] 그나마 루마니아는 제2차 대전 시기 추축국의 일원으로 독소전쟁에 참전할 당시 몰도바, 우크라이나 등 구소련권 국가들에서 살던 유대인들에게 저지른 학살은 80년이나 되어갈 정도로 사람들의 기억에서 상대적으로 잊혀졌고 제2차 대전 당시의 유대인 학살 역시 추축국의 주요국이었던 나치 독일이 저지른 대량학살의 규모가 루마니아가 저지른 학살 규모보다 워낙 커서 그렇다 치지만 세르비아가 1990년대 유고 내전 당시 보스니아와 코소보에서 자행한 대량 학살은 고작 반세기도 지내지 않은 상황이고, 피해국인 보스니아와 코소보와 세르비아한테 직접적인 피해를 겪지 않았던 여타 유럽 나라들 내부에서도 세르비아에 대한 반감과 증오의 불씨가 아직도 남아있고 그로 인한 세르비아와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등 옛 유고 연방권 국가들과의 역사 갈등 역시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에 문제가 더욱 크다. 다른 동유럽 국가들의 경우 [[알바니아]]와 [[헝가리]],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크로아티아]]는 튀르키예의 입장을 옹호하고 있으며, 체코와 폴란드는 아르메니아를 지지하고 있다. 특히 [[체코]]와 [[폴란드]]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군과 구 소련군에게 점령, 학살[* 체코- 1942년 리디체 마을 학살, 폴란드-1943년 카틴숲 학살, 1944년 바르샤바 봉기 당시 나치 독일군의 폴란드 민간인 학살.]을 당한 전적도 있었기에 이 학살을 국회에서 결의안으로 발의, 채택하며 아르메니아를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있다. 그러나 독일이나 영국, 프랑스 등 다른 서유럽 열강들이 아르메니아인 대학살을 두고 튀르키예를 비난하면 체코와 폴란드 역시 독, 영, 프 3국은 튀르키예를 비판하기 전에 식민지 제국주의로 타국들에게 가해를 입혔던 과거사들에 대해 먼저 반성하고 오라며 독일과 영국, 프랑스도 튀르키예와 함께 비판하고 있으며 아래 하술된 것처럼 독일이 아르메니아인 대학살에 대해 튀르키예에게 사과를 촉구하면서, 반대로 독일 제국 시절 식민지였던 아프리카 나미비아에서 저지른 헤레로족 학살에 대해 자기들이 직접 안 죽이고 사자, 하이에나 같은 맹수들에게 잡아먹히거나 사막에 놔뒀는데 굷어죽었다는 식의 망언을 하자 불편한 기색을 보이며 나미비아를 편들기도 했다. [[서유럽]] 지역 국가들은 아르메니아인 대학살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며 여기에 의혹을 제기하는 등의 논쟁의 대상이 될 수 없는 반인륜적 범죄 행위로 보는 입장이다. 우선 [[영국]]은 학살로 규정하고 있지만 대영제국 시절 [[벵골 대기근]]과 [[아일랜드 대기근]]을 방관하거나 인도 암리차르에서 인도인들을 학살하고 케냐와 이라크에서 케냐인, 쿠르드인 학살을 벌이던 일처럼 제국주의 시기 아르메니아 대학살을 능가할 정도로 여기저기서 벌여 놓은 일이 워낙 많은지라 튀르키예에서는 '''"너희들부터 사과, 보상하시지?"'''라고 맞서면서 대영제국 시절의 식민지였던 아일랜드나 인도, 케냐 같은 국가들에서 영국이 저지른 악행부터 먼저 반성하라고 권유하고 있다. 특히 [[아일랜드 대기근]] 역시 영국을 데꿀멍하게 만드는 주 소재다. 대기근 와중에 굶어 죽어가던 아일랜드를 영국이 지원도 외면해 그야말로 아르메니아 학살이랑 비슷하거나 그 이상일 수도 있는 200만 이상이 죽어나가고 사람들이 아일랜드를 떠나게 만들어 850만 인구가 400만 이하로 줄어들게 한 인재[* 200년 가까이 지난 2010년대에도 아일랜드 인구는 이 기근 전의 인구 수를 회복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이다. 그러니 지금도 아일랜드가 이를 갈며 학살이라고 영국을 비난하고 있으며 튀르키예의 이런 지적에 동감하며 영국에게 맞섰다.[* 실제로 튀르키예는 아일랜드 대기근 당시에 자국도 어려운 판국에 [[술탄]] 압뒬메지트 1세가 구호를 위해 1만 파운드를 보내려 했는데, [[빅토리아 여왕]]이 자기는 2천 파운드만 보냈다며 대영 제국 위신이 떨어지니 1천 파운드만 기부해 달라고 요구했다(심지어 처음에는 자본주의 시장경제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술탄에게 돈도, 식량도 절대 보내지 말라고 요구했다.) 술탄은 이 요구에 응했지만 그 대신 식료품을 가득 채운 배 3척을 몰래 보냈고, 튀르키예 선원들은 영국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아일랜드에 이를 전달했는데 아일랜드에서는 무척 고마워했고 감사장도 보내주고 일부 지역에서는 오스만 제국 상징이던 초승달을 지역 문장에 넣어가며 고마움을 표하던 일이 있었던 만큼 아일랜드 대기근에 대해서 영국과 반대로 튀르키예가 은혜를 베풀었다. 아일랜드가 쌍수를 들고 바로 맞선 데는 이유가 있다.] [[프랑스]]는 아르메니아 학살에 대해 매우 비판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고 튀르키예가 피해국인 아르메니아에게 제대로 된 사과와 보상을 할 것을 요구하지만 식민제국 시절 앙숙 영국과 마찬가지로 자기들도 [[알제리]], [[튀니지]], [[모로코]], [[마다가스카르]], [[세네갈]], [[베트남]], [[아이티]], [[캐나다]] [[퀘벡주]], [[미국]] [[루이지애나주]] 등 옛 식민지에서 저지른 민간인 및 타민족 학살 만행은 물론 심지어 프랑스 자국 내에서 벌인 [[방데 학살]]까지 있으면서도 이것들을 인정하지 않거나 애써 정당화하려는 태도도 판박이라 [[튀르키예]]로부터 이걸 놓고 두고두고 역공당하고 있다. [[벨기에]]도 프랑스와 마찬가지로 오스만 제국 시기 아르메니아인 학살을 저지른 튀르키예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는데 튀르키예는 벨기에의 지배를 받았던 [[콩고민주공화국]]과 [[르완다]], [[부룬디]] 등 [[아프리카]]의 3개국에게 '야 니네 나라들 짓밟은 벨기에 새끼들 하는 짓 좀 봐라 자기들이 저지른 악행[* [[레오폴드 2세]], [[콩고 자유국]], [[르완다 내전]], [[부룬디 내전]] 문서들을 참고할 것.]은 아예 나몰라라 하는 주제에 누굴 비판하는 거야? 너희 국가들은 이거 보고 화 안 나냐?'며 약올리고 역사적으로 벨기에에 대한 증오와 원한이 가득한 [[콩고민주공화국]]과 부룬디, 르완다는 중동 지역 먼 나라에서 있었던 살육 행위 너네들 욕할 자격이 되냐며 벨기에를 비난하고 있다(...). [[네덜란드]] 역시 학살로 보고 있지만 튀르키예는 네덜란드의 왕족과 총리, 외무장관 등 정치인들이 아르메니아인 대학살을 비판하거나 언급하면 [[네덜란드 제국|예전 네덜란드]]의 [[식민지]]였던 인도네시아와 수리남, 남아프리카 공화국 같은 국가들에서 자국이 저질렀던 식민지인 학살과 착취 같은 만행들을 한번 되돌아보라며 반격을 가한다. 하지만 네덜란드는 그나마 영국이나 프랑스, 벨기에 등에 비해선 식민제국 시절 [[인도네시아]]에서 저지른 식민지 독립운동 탄압과 학살 같은 만행들에 대해서는 꾸준히 사과와 피해배상은 하는 편이기 때문에 '응 우리나라도 인도네시아에게 사과, 배상하고 있어 그러니까 너네들도 아르메니아한테 사과해야 하지 않겠냐?'며 맞받아친다. 하지만 이는 현재 인도네시아의 국력이 네덜란드보다 강한 점[* 지금도 인도네시아는 [[동남아시아]]에서도 지역강국으로 평가받을 정도로 인구, 군사력 모두 식민지배국이었던 네덜란드를 상회하고 있다.]이 있고 남아공이나 수리남에 대해서는 반성하지 않거나 소극적으로 반성을 하는지라[* 네덜란드는 17세기 이후 케이프타운과 오렌지강 유역 등 남아프리카 공화국 서남부 지역을 식민지로 합병했으나 1814년 영국과의 아프리카 식민지 세력 경쟁에서 밀려 이 지역들의 영유권을 모조리 영국한테 내어주면서 남아공 지역에 대한 식민지배권을 완전히 상실했다.] 튀르키예가 인도네시아말고 다른 식민지 나라에선 하냐고 이러면 네덜란드도 입 다문다(...) [[독일]]도 아르메니아 학살에 대하여 튀르키예를 비난했다가 프랑스, 영국, 벨기에, 네덜란드 등 다른 서유럽 국가들처럼 식민제국 시절 식민지였던 나라들에서 자국이 저지른 만행으로 인해 튀르키예한테서 역반격을 당했는데 바로 20세기 초반 [[나미비아]], [[탄자니아]] 등 아프리카 식민지에서 헤레로 족, 나마 족, 무분가 족, 응긴도 족 등을 비롯한 여러 아프리카 식민지 토착민들에 대한 독일군의 학살이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나미비아의 헤레로 족만 해도 이 당시, 전 인구 80% 이상이 노약자건 어린이건 마구잡이식 학살로 인해 목숨을 잃었다. 그럼에도 독일은 이스라엘과 유태인에 대한 배상과 사죄와 정반대로 "이 당시 독일이 아프리카 식민지였던 나미비아나 탄자니아 등지에서 저지른 식민지 토착민 학살에 대해서 이것은 [[독일 제국]]의 책임이니 현 우리나라에게는 책임질 의무가 없다. 그 당시에 죽었던 나미비아나 탄자니아 사람들 우리 군인들이 직접 안 죽이고 사막에서 굷어죽거나, 사바나 초원지대에서 길 잃고 해매다가 악어나 하이에나, 사자, 표범에게 포식당해서 죽었다."고 말하며 모른 척했기 때문에~~제3 제국이 한건 책임지면서 제2 제국이 한건 책임 안지는 내로남불~~ 튀르키예로부터 어? "우리가 하던 소리 똑같이 하네?" 라고 비웃음을 신나게 들었다. 2004년 독일 경제장관이던 하이더마리 비쵸레크-조일(사회민주당)이 "오늘날 우리가 아는 용어를 들이대면 헤레로 족 사태는 집단학살"이라고 말하며 독일 정부의 이름으로 사과했다. 그러나 그런 사죄가 보상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고 보는 [[요슈카 피셔]] 당시 외무장관이 반대했다. 웃기는게 이 요슈카 피셔가 바로 녹색당 소속으로 진보적이라니 뭐니 하던 인물이고 [[이라크 전쟁]]을 반대하고 이 아르메니아 학살 비난하던 주제에 본인 자신은 이렇게 나미비아한테 배상금 주면 안된다라는 말이나 하던 인물이었고 막상 지들 나라가 아프리카 식민지에서 벌인 학살에 보상금 여부로 반대했던 거였다. 당연하지만 이 소리에 대해 독일 제국 당시 독일의 피지배국이었던 나미비아, 탄자니아, 카메룬, 토고 같은 아프리카 나라들에서는 분노했고, 이 여파로 나미비아나 탄자니아 등은 독일의 [[유엔]] [[상임이사국]] 선정을 결사반대하고 있다. 그리고 나미비아 같은 아프리카 국가 뿐만 아니라 홀로코스트 당시 자국의 주류 민족인 유대인들이 대량학살당한 최대 피해자인 [[이스라엘]]과 똑같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에게 당했던 폴란드와 체코 등 독일과 이웃한 동유럽 국가들에서도 이 발언에 대해 무척 기분나빠하며 나미비아의 입장을 옹호했는데 '유대인들도 [[독일 국방군]]과 [[슈츠슈타펠]]이 직접 안 죽이고 폴란드 아우슈비츠에서 알아서 죽었냐?', '아~ 그럼 제2차 대전 당시 체코 리디체 마을 학살과 폴란드 [[바르샤바 봉기]] 때 사망한 체코 국민과 폴란드 국민들도 독일군들이 안 죽였겠구나?', '너네 나라 역대 총리와 대통령들이 우리나라 방문하면서 했던 나치 만행 사과 성명들은 다 우리들을 속이기 위한 권모술수였구나' ~~실제로 이는 [[홀로코스트 부인론]]을 외치는 독일 극단 극우들이 하던 소리다~~라고 말하며 독일 정치인들의 헤레로족 학살에 대한 망언을 비난하는 등 이러한 독일의 이중잣대적 행태가 국제적인 망신거리가 되기도 했다. 그래도 일단 독일은 2010년대와 2020년대에 와서는 아프리카 식민지에서 자국이 학살을 저질렀다고 정부요인들이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반성하고 있긴 하다. [[이탈리아]]도 2000년과 2019년에 국회에서 아르메니아인 대학살을 인정하면서 튀르키예에게 아르메니아에 대한 사과를 촉구하는 규탄 결의안을 두 번씩이나 발의하기도 했지만 이탈리아 역시 전간기 말기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리비아와 에리트레아, 에티오피아, 그리스 등지에서 민간인 학살을 자행한 전적이 있었기 때문에 피해국가인 이들 국가 네티즌들 사이에서도 튀르키예에게 사과 요구를 할 처지가 되냐며 비난을 받고 있다. 다만 그리스와 리비아는 이탈리아에게 당해온 것과는 별개로 오스만 제국 시절 튀르키예에게 당해온 이력도 있었기 때문에 이 국가들 역시 아르메니아인 대학살을 정부 차원에서 공식 인정하고 있으며 이탈리아나 튀르키예나 두 나라 모두 학살 가해국이라며 두 나라를 비난하고 있다. 이러한 튀르키예의 유럽에 대한 반격은 확실히 맞는 말이기는 하지만 결국은 아주 교과서적인 '''피장파장의 오류'''에 불과하며 특히 당시 튀르키에가 핑계를 댄 사안들에 대해 유럽 국가들이 튀르키에와는 달리 과오에 대해 피해보상 및 사과나 유감 표명이라도 하거나 최소한 사실을 부정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러한 튀르키예의 반응은 그야말로 후진적인 [[역사 왜곡]]에 불과하다. 게다가 튀르키예는 [[덴마크]]에 1783년 [[라키 화산|라카기가르 화산]]이 폭발하면서 가축의 80%가 죽고 이 여파로 기근이 다가오면서 [[아이슬란드]] 인구의 4분의 1 가량이 사망했던 일을 가지고 당시 아이슬란드를 지배하던 덴마크를 비난하다가 오히려 역관광당한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참고로 라카기가르 화산 폭발은 바로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난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지적 잘못해도 한참을 잘못 한 것.~~우쭐하고 나대다가 역관광탔다.~~] 튀르키예가 이걸 거론한 게 튀르키예를 비난하는 영국에 [[아일랜드 대기근]]을 들먹여 엿먹인 적이 있었기에 비슷하게 들먹인 것이었다. 그러나 아일랜드와 달리 덴마크는 본토까지 피해를 입었기에 이건 [[자폭]]이었다.[* 자폭도 그냥 자폭이 아니었는데 사실 덴마크 본국도 '''이 기근으로 약 8만에서 20만 명이 사망했고''' 당시 덴마크 국왕이었던 크리스티안 7세가 '''끼니를 걱정했다.''' 다른 사람도 아닌 한 나라의 군주마저 이랬으니 나머지 사람들은 설명할 필요가 있을까? 덴마크는 17세기까지 3백여년 정도는 아이슬란드나 [[페로 제도]]에 대하여 차별 없이 잘 지내왔으나 18세기 덴마크가 강압적으로 아이슬란드 의회를 없앤다든지 하는 등 점차 선민적으로 변해 아이슬란드와 갈등을 빚었다는 이야기도 있으나 아이슬란드의 의회는 이후 다시 원상 복귀되었고 오히려 덴마크는 이후 아이슬란드에 자치권을 더 부여하는 등 여타 식민제국들에 비하면 상당히 관대한 정책을 폈고 딱히 핍박하지도 않았다. 그 결과 그 흔한 무장투쟁도 별로 일어나지 않았고 현재도 딱히 서로간의 악감정은 없다. 직접적인 학살을 한 타국에 비하면 새발의 피에 불과하다.] [[러시아]]도 학살로 인정하지만 '튀르키에에서 러시아는 뭐 잘났냐? 19세기에 무고한 무슬림 체르케스인들을 집단학살하여 그들이 오스만 제국으로 건너와 루마니아에서 증오로 기독교인을 학살했고 부메랑처럼 돌고 돌아 발칸 지역 포마크인들이 이 아르메니아 학살에 협조했으며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의 갈등과 양 측 학살 원인도 만들지 않았느냐?' 라는 비아냥에 대하여 부정한다. 아르메니아에서 러시아는 애증어린 상대이고 온갖 학살에도 기여한 원인을 만들었기에 반러 감정도 가득하지만, 지리적 요건으로 친러정책을 취해야 하는 현실이다. 일단 현대에 와서 세계적으로 대학살이었다고 인정은 하지만 튀르키예의 끈질긴 피장파장식 물귀신 작전과 같이 아르메니아가 소련에 강제 병합된 후 70년이 넘게 목소리를 내지 못했고 냉전 시대에 튀르키예를 더 중요하게 본 미국이 이를 덮어버렸던 역사가 있다. 이러다보니 냉전 시대에는 듣보잡으로 묻혔다. 오죽하면 20년도 채 지나지 않은 1933년 [[아돌프 히틀러]]가 연설하면서 '바로 아르메니아 학살을 지금 거론하는 나라가 얼마나 있느냐? 유대인 및 비독일인과 자신의 사상을 따르지 않은 독일인까지 학살하는 것을 이처럼 얼마든지 문제 없이 덮을 수 있다'고 큰소리쳤을 정도로 당시에도 묻혔음을 알 수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